공공기관 정상화 실적 위해 '종사자 팔 비트는' 박근혜 정부

 

 

 

"6·25 전쟁이 난 줄 알았다."

 

이달 25일을 전후해 상당수 공공기관들이 정상화 대책 이행계획 가이드라인에 맞춘 단체협약에 부랴부랴 도장을 찍는 모습들을 본 한 공공기관노조 위원장의 푸념 섞인 말이다.

 

정부는 지난 12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25일까지 단체협약을 타결하는 기관에 대해 중간평가를 실시해 방만경영 중점관리 또는 점검기관 지정을 조기에 해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12일 중점관리기관 38개 중 10곳에 그쳤던 완전 타결기관이 29일 현재 14곳으로 늘었다. 퇴직금 산정기준이나 고용안정 등 쟁점 한두 개를 제외한 나머지를 합의한 기관은 10곳이다.

 

기획재정부가 일부 조항을 뺀 나머지를 합의한 기관을 '셈'에 넣어 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일단 반쪽짜리 성적표라도 제출해야 면피라도 한다는 심정에 기관장과 임원들이 노조를 향해 읍소에 나서면서 합의가 잇따랐다는 후문이다. 기재부가 30일까지 단협 타결을 마무리하는 기관은 인정해 주겠다는 '선심'을 보였다고 하니, 몇 곳이나 늘어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의기양양한 정부, 하지만 …

 

기관들의 합의가 잇따르자 정부는 의기양양한 분위기다. 한 정부기관 관계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만 합의하면 큰 덩어리들은 다 끝난 거 아니냐"며 "기재부에서는 계속 (노사) 합의가 되고 있으니까 정상화가 이 정도면 잘 추진되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LH는 30일 합의를 앞두고 있다. 개별기관 노조들이 개별 노사교섭을 통해 팔(복리후생)을 하나씩 잘라 내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부터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라는 투쟁기구를 만들어 공동행보를 걸어온 노동계로서는 보이지 않는 균열을 경험하고 있다. 투쟁력이 꺾인 것도 사실이다.

 

이달 24일 공공노련(위원장 김주영)이 일부 핵심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를 개별교섭에 맡기기로 결정한 뒤 다른 연맹 산하 미합의기관 노조들은 "너만 힘드냐, 우리도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합의한 기관들도 조합원들의 불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경영평가 성과급을 퇴직금에 포함하는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를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도로공사가 그렇다. 복리후생이 좋은 편이 아닌 데다가 조합원들로부터 호응을 받았던 '중고생 자녀 학자금 전액 지원'을 '공무원 수준'으로 변경하기로 하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2013년도 경영평가에서 대다수 공공기관에 낙제점을 주면서 경영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혹도 폭발 직전이다. E등급을 받은 한 공공기관 종사자는 "정부가 정상화 대책을 추진하면서 명분을 쌓기 위해 일부러 우리(공공기관)를 쓰레기로 만들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기관장들 "우리도 스트레스"

 

정상화 대책에 스트레스를 받는 건 노조만이 아니다. 오는 9월께 정상화 계획 이행실적에 대한 중간평가 결과에 따라 해임·성과급 제한·임금동결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기관장들이 받는 압박감은 상당하다. 기재부는 55개 방만경영 체크리스트에 맞춰 단협을 타결하고 노사 간 이면합의가 없다는 진술확인서까지 제출해야만 합의기관으로 인정하고 있다. 기관장들마저 "틈은 좀 만들어 줘야 하지 않느냐"는 불만을 제기하는 실정이다.

 

경영평가에서 E등급을 받거나 2년 연속 D등급을 받았지만 임명기간이 6개월 미만이어서 해임건의가 유보된 12개 기관 기관장들은 노조를 어르고 달래고 압박하며 단협 타결에 목을 맨다.

 

복리후생을 회수하는 대신 묵혀 둔 현안이나 노조의 숙원을 들어주는 식으로 반쪽짜리 단협을 타결한 기관장은 한숨을 돌린 반면 그마저도 노조와 합의하지 못한 기관장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E등급을 받은 또 다른 공공기관 종사자는 "그나마 관피아·정피아로 분류되는 끗발 있는 기관장은 정부랑 얘기라도 되는 것 같은데, 힘이 없는 기관장들은 아무것도 안 되고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어 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가스공사(E등급)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기관장(장석효 사장)이 힘이 없는 데다 성의도 없고 공사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 없어 직원들의 원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밟히자 꿈틀한 기관장도 있다. 2년 연속 경영평가 D등급을 받아 해임 건의된 남궁민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원장은 '괘씸죄'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노조 배제하고 성공한 공공개혁 본 적 없다"

 

전문가들은 "지엽 말단적인 실적내기에 급급한 정상화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공공기관노조의 팔을 비틀어 얻어 낸 실적을 정상화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형식적으로는 과도한 복리후생은 줄이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경쟁력을 높여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동기부여가 안 되면 일할 맛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 소장은 "역대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에 실패한 이유는 제대로 된 정상화 로드맵을 만들지도 못하면서 관피아 낙하산들을 내려보내고, 애먼 종사자들만 잡았기 때문"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전임 정부들이 실패한 길을 답습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태주 한국기술교육대 고용노동연수원 박사는 "공공기관 개혁은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와 협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데 박근혜 정부는 노동집약적이고 노조조직률도 높은 공공기관을 개혁한다면서 노동배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정부가 일방적 논리와 권위로 밀어붙여서 설령 어찌어찌 부채감축이 이뤄진다고 해도 공공기관이 정상화됐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공공기관노조들을 향한 쓴소리도 나왔다. 박태주 박사는 "정부가 노동탄압적으로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공공기관노조들이 경제적 실리주의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라며 "국민이 공공기관을 도덕적 해이와 집단이기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면서 정부가 아무렇지도 않게 압박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된 실리도 못 챙기면서 실리주의만 탐했다는 지적이다.

 

 

공대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대위는 잇따른 합의 국면에서도 공동투쟁 전선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1단계 전투'였던 복리후생 고지는 뺏겼지만 민영화·기능조정·구조조정 문제와 예산편성지침 등 '2단계 전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공대위는 27일 대표자회의를 열어 기존 방침대로 7월 말까지 쟁의권을 확보한 뒤 8월 말 총파업을 조직한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미 노사합의를 한 기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공대위 관계자는 "정부의 치졸한 압박에 합의한 곳이 있긴 하지만 다음 투쟁을 결의하는 계기로 삼고 끝까지 함께한다는 의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